장기침체는 한 국가의 성장활력이 크게 떨어지고 저성장이 오랜 기간 지속되는 상황을 뜻한다. UN통계를 이용해 분석해보면 전세계 211개국가중 절반 이상이 장기침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오일쇼크나 외환위기 등 경제충격으로 촉발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중위소득 국가들에게 더 자주 발생한다. 생산요소 측면에서는 노동이나 자본투입보다는 생산성 하락이 장기침체를 가져온 주된 요인이다. 침체가 시작되는 기간에 대부분 국가에서 재정적자 비중이 높게 나타났으며 물가, 고용 불안도 확대되었다.

장기침체를 겪으면서 국가의 위상이 한 단계 낮아진 남유럽이나 중남미 국가들은 포퓰리즘에 따른 단기정책이 장기적 성장기반을 약화시키고 경직된 노동시장이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보호주의 강화와 재정확대 등 무리한 부양을 통해 성장을 유지하려다가 기업경쟁력 저하, 재정기능 약화에 따른 인프라 부족 등의 후유증으로 현재까지 고전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같이 세계 산업구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진 사례도 있다. 일본의 장기침체는 고령화 등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엔고와 디플레, 국가부채확대를 막지 못한 점은 정책적 책임이 크다.

최근 우리경제의 흐름을 보면 장기침체를 겪었던 국가들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세계경제의 활력이 저하되고 산업 및 경쟁구조도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수출의 성장견인력이 크게 약화된 가운데 수요위축의 악순환 등 위기 후 증후군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내경제 성장세 저하는 생산성 증가율 하락에 따른 영향이 가장 크게 나타났는데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다. 자본투입도 둔화되는 가운데 노동투입이 늘면서 성장을 지지하고 있지만 이는 지속되기 힘들다. 자본투입 둔화가 이어지고 생산성 저하추세가 개선되지 못할 경우 향후 5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 중반, 2020년대에는 1%대로 낮아질 수 있다.

과거 침체를 겪었던 국가의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경제의 비효율성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 노동시장 및 공공부문 구조개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재정확대나 부동산 부양 등을 통해 무리하게 과거의 성장세를 되찾으려는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재정 및 연금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내수서비스 부문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노력을 강화하고 수출과 내수의 균형성장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해 스탠리 피셔 미연준 부의장과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미국경제의 ‘secular stagnation’, 즉 경기침체가 일상적이 되는 상황에 대해 경고하면서 세계적으로 장기침체 리스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바 있다. 장기침체 논의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지지만 선진국의 수요부진은 교역을 통해 개도국으로 확산되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성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중국이나 브라질, 러시아, 그리고 산유국 및 원자재 수출국가들의 성장 저하 역시 선진국의 수입수요 둔화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진국 경기의 장기침체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이 제기된다. 서머스 교수는 저축과 투자간의 구조적인 불균형을 지목한다. IT 부문의 빠른 기술발전은 자본재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전체 투자수요를 위축시킨다. 과거 글로벌 기업들은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지만 애플과 구글 등 IT 기반 기업들은 오히려 대규모 현금을 유보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반면 평균수명 증가와 인구증가율 하락으로 저축의 필요성은 커지게 되는데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실질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실질금리 균형이 제로금리 이하로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될 경우 통화정책의 효과가 떨어지게 되면서 저성장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루그먼도 디레버리지와 인구감소에 따른 실질금리의 하향추세를 인정한 바 있다.

반면 고든 교수는 잠재성장능력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급격하게 바꾸는 중요한 발명들이 마무리되면서 과거와 같이 빠른 생산성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IT 혁명은 기대했던 것만큼 큰 변화를 주지 못했으며 성장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고 있다. 이와 함께 인구증가율의 둔화, 교육투자의 효율성 하락, 소득불평등 확대, 국가부채 등도 선진국의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아이켄그린 교수는 세계화로 개도국 경제의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에 선진국의 상대적 저축증가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어서 제로금리까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요한 발명이 끝났다는 주장도 신빙성이 높지 않으며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이 시차를 두고 생산성 증가에 반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실질금리를 떨어뜨릴 수 있는 완화적이고 과감한 통화정책과 투자수요를 끌어올릴 수 있는 촉진책이 제시된다. 잠재성장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제도 개선과 인프라 투자 확대가 강조된다. 이와 함께 소득격차 축소와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해 소비기반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이다.

출처 : 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