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하는 시기의 경제적 환경변화로 인해 이전 시기에 비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고용에 불이익을 당하는 청년들이 오랜 기간 누적될 때 ‘잃어버린 세대’가 형성된다. 청년실업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세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는 취업빙하기 세대라고 불리운다. 버블붕괴 이후 1990년대 초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 시점에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장기침체와 청년인구 증가, 일본식 고용시스템의 변화와 경직적 노동시장 구조가 청년 고용여건을 어렵게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취직빙하기중 일본 청년들은 고실업과 저임금, 고용불안의 3중고를 겪었으며 이직이 잦았고 사내교육을 통한 능력축적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 청년들의 좌절감 확산으로 체념하고 포기하는 현실순응적 경향이 확대되었고 안정추구 성향이 높아졌다. 비혼과 만혼이 늘면서 출산율 하락추세가 이어졌다. 취업의 어려움으로 대학진학률이 높아졌으나 졸업 이후에도 취업난이 지속되면서 경제적 부담이 컸다.
현재 일본 빙하기세대는 30대 중반~40대 중반의 중년층이 되었다. 청년실업 문제는 해소되었지만 중년층은 여전히 이전 세대보다 낮은 임금과 높은 비정규직 비중을 나타낸다. 중년층의 소비성향 저하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빙하기 중 유년기를 겪은 현재의 청년세대까지도 소비성향 저하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상당수 빙하기 세대가 부모에 의존하고 있지만 부모의 은퇴시점이 도래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 전망이다. 빙하기 세대가 60대가 되는 2030년대 일본은 가난한 노인이 늘면서 재정부담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잃어버린 세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청년실업률이나 임금 측면에서 우리 청년들의 고통은 일본 빙하기 세대보다 작지 않다. 20대 청년실업률이 10%를 넘어선 가운데 대졸 초임 임금이 10년 동안 정체한 상황이며 근로의지를 상실한 니트족도 대졸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빙하기중 다른 연령대도 고용충격을 받았으나 우리나라는 중장년 연령층의 고용상황은 나빠지지 않는 가운데 청년층에만 충격이 집중되고 있다. 성장 저하에도 전체 고용창출이 줄지 않았으나 서비스 중심 성장이 청년층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기존 노동시장에 대한 보호가 높아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가 큰 점, 높은 대학진학률로 학력 미스매치가 크다는 점도 청년취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정년연장 및 시간제 일자리 확대로 고령층과 여성 고용이 뚜렷하게 개선되면서 상대적으로 청년고용은 늘지 못하는 상황이다.
청년실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고용충격이 점차 30대초반으로 까지 확산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30대 초반 연령층의 취업예비군이 늘어나고 임금상승세도 꺾이는 모습이다. 30대 가구의 소비성향 하락폭도 최근 확대되는 추세다.
청년실업난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성장의 고용창출효과 증대, 생산가능 인구 감소로 전체 고용률이 높아질 전망이지만 외벌이 소득으로 가계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여성층, 노후대비가 부족한 고령층이 향후 고용증가의 상당부분을 지속적으로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 진학이나 육아를 이유로 노동시장을 떠나는 청년들이 줄어들면서 경제활동참가율이 계속 높아질 것이다. 다만 2020년대 초반 이후 청년인구 감소추세가 가속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일단락되면서 청년실업문제가 점차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잃어버린 세대는 10년 이상 지속되어 일본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
취업 지연이 임금을 떨어뜨리는 낙인효과(scarring effect)를 계산해보면 잃어버린 세대기간 중 1년간의 실업기간을 겪은 청년들의 임금이 9.8%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와 동거하는 미혼자녀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어 경제적으로 불안한 청년들을 부양해야 하는 부모세대의 고통도 가중되는 모습이다. 낙인효과는 국가경제의 입장에서 노동투입과 생산성 감소에 따른 잠재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것이며 세수감소 및 사회보장 지출부담 확대로 재정악화 효과도 나타나게 된다.
일본은 청년실업 문제를 뒤늦게 인식해 대책마련이 늦었으며 노동시장의이중구조를 해소하지 못한 점이 빙하기세대를 만든 요인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역시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고용충격이 청년층에 집중되는 만큼 보다 과감한 청년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이직하지 않는 청년들
노동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은 청년들은 일단 입사한 후에는 잘 이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후 한번도 취업경험이 없는 20대 청년 비중은 지난 2004년 8%에서 최근 13.8%로 급증한 반면 졸업 이후 두 번 이상 취업한 청년의 비중은 55.7%에서 45.8%로 하락했다.결과적으로 처음 취직한 직장에 계속 머물러 있는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집계되었다. 미래 불안감 확대로 공무원이나 공기업 등 안정적 직업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되는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의 청년들과는 다소 대비된다. 일본의 청년들도 정규직 및 대기업 일자리를 선호하지만 구직에 실패할 경우 비정규직을 선택한 후 경력을 쌓아 이직하는 길을 택하는 경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우리 청년들 은 휴학 등을 통해 졸업을 연장하고 취업재수를 해서라도 처음에 좋은 직장을 선택하려는 유인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비정규직/정규직 임금 비중이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낮은 점도 이러한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IMF 세대의 소득 충격은 일시적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졸업을 했던 세대가 겪은 경제적 충격은 최근 잃어버린 세대가 겪고 있는 충격에 비해 단기간에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패널을 이용해 졸업연도별로 장기 소득을 추계한 결과 97~98년에 졸업한 세대들의 소득은 졸업 6년 이후 시점에서는 이전 혹은 이후세대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98~99년 두자리 수로 치솟은 청년실업을 감안할 때 당시에는 졸업생들의 충격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환위기 충격이 단기간에 극복되면서 청년들의 충격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IMF 세대는 실업을 피하기 위해 졸업을 늦추거나 어학연수를 통해 소위 ’스펙’을 쌓기 시작한 최초의 세대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졸업 당시의 충격을 극복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40대가 된 IMF 세대의 소득은 이전 세대에 비해 큰 단절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청년실업의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충격을 피해가는 것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행어로 본 일본 빙하기 세대
취업난이 생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면서 빙하기 세대는 빈궁세대, 비참세대로 불리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구직활동도 하지 않고 교육도 받지 않는 니트(NEET), 정규직을 선호하지 않고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터(FREETER)라는 용어가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워지자 고의로 F학점을 맞아 취업을 미루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취업유급자들을 국가의 부채상환 거부에 비유해 모라토리엄 세대로 부르기도 했다. 넷카페 난민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월세를 내기 어려워진 실업자들이 인터넷 카페에서 숙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립할 능력을 상실한 청년들은 결국 부모세대에 의존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파라사이또 싱구르(parasite single)가 크게 늘었으며,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깨달음, 득도라는 의미를 지니는 사토리 세대는 유년기에 빙하기의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면서 야망이 없고 소비활동에 소극적인 현재 일본의 청년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출처 : 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