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not that easy~ Can you pass me sesame oil?”

나오코 하루키(24 일본) 씨가 아침부터 부산하게 참기름과 버무려진 쌀밥과 갖가지 볶은 채소, 김을 놓고 씨름을 하고 있다. 이리저리 솜씨 좋게 돌려가면서 말아보아도 생각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 옆에 있던 아츠카 하루키(21 일본) 씨는 그런 언니가 재미있는지 이리저리 코치하며 신이나 보인다. ‘오늘의 요리사’ 두 사람은 신이 났고 부산한 소음과 함께 고소한 김밥냄새가 게스트하우스 주방을 가득 메운다.

4월의 봄볕 따스한 토요일 아침 10시, 멀리서 들리는 경적소리에 단잠을 깨우는 게스트하우스의 아침 풍경. 여기는 서울 도심 한 가운에 위치한 ‘24게스트하우스 신촌점’ 이다.

일본에서 온 나오코와 아츠카 자매가 서비스로 제공되는 일명 ‘코리안 스타일 브런치’-셀프 김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후 한강 벚꽃축제 구경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어제는 20대 여대생의 쇼핑 메카로 통하는 신촌과 이화여대 앞에서 화장품과 패션 쇼핑을 즐기고, 오늘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로이 만난 친구들과 그새 친해진 한국인 스태프와 함께 ‘한강 벚꽃축제’를 즐기며 한국의 봄 정취에 흠뻑 빠질 요량으로 한껏 들떠있다.

“Do You Want to Join?”

다 해서 일곱 명이 1층 리셉션 커피 머신 앞으로 모였다. 함께 벚꽃축제를 가기로 한 프랑스인 피에르 보통(19 프랑스)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어제 밤 24게스트하우스 홍대 클럽투어 이벤트로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느라 늦잠을 자는 모양이다. 기다리는 동안 헬레나 도로킨(25 체코)은 로비에 비치된 각종 투어프로그램 팜플렛을 살펴보며 스태프에게 어떤 투어가 좋은지 조언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고 그래햄 라이언(26 남아공)은 공용pc섹션에서 다음 주 떠날 베이징행 비행기티켓을 알아보느라 바쁘다. 나오코(24 일본)와 아츠카(21 일본), 멩 파리쳇(22 태국), 페이 씨에(20 중국)는 24게스트하우스의 마스코트인 일명 ‘시크 토끼’가 그려진 트릭아트 벽화 앞에서 연신 셔터를 누르며 까르르 웃는다.

10분쯤 지났을까 피에르가 눈을 비비며 라운지로 들어선다. 이어 학창 시절 떠난 티벳과 몽골 배낭 여행에서 게스트하우스만의 독특한 묘미에 빠져 대학 졸업과 동시에 24게스트하우스의 점장으로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신은지(26)씨가 한 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 손에는 참가 명단을 들고 라운지로 들어선다.

20대의 젊음과 패기, 대학시절 방학 때마다 떠난 배낭여행, 홍대 인디밴드 활동, 태권도 공인 3단으로 다져진 체력,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수준급 어학실력을 바탕으로 24 게스트하우스 점장으로 채용. 본사 교육 후 객실 34개, 총 수용인원 80명에 달하는 신촌점 점장으로 파견근무 중이다.

그렇게 여덟 명의 다국적 젊은이들과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졌다. 뒤 돌아 서는 길, 저 멀리서 4월의 찬란한 봄을 담은듯한 샛노란 유니폼이 인상적인 은지씨가 큰 소리로 외친다. “기자님도 오늘 저녁에 옥상 바비큐 파티에 꼭 오세요! 오늘은 제가 만드는 특제 홍초 막걸리 파티입니다!”

“We are all fiends!”

외로워서 떠나 온 여행이어도, 무언가를 훌훌 털어버리려 시작한 여행도, 어쩌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자 떠나온 여행조차도, 여행 이란 것은 때로는 우리를 더 외롭게 하기도 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덟 젊은이를 지금 여기로 모이게 한 것은 어떤 인연의 끈으로 맞닿아 있을 것이다. 또 매일 아침, 매일 밤 이렇게 모여 이야기를 하고 삶과 여행을 공유하는 것도 어쩌면 사람에 대한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과 허기일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혹은 꿈을 가지고 그 낯섦과 조우했고, 거기서 엿보는 차이에 열광하게 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들은 가장 인상 깊은 말은 ‘We are all friends!’ 였다.

길을 나선 사연들이야 다 다르겠지만 여행이라는 공통의 목마름으로 모여든 그들에게서 게스트하우스는 숙소 이상의 공간이다. 도미토리 룸(개별침대 단위로 판매되는 다인실)의 옆 침대 여행객의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거나, 무료 국제전화를 걸 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번거로울 때도 있다.

그러나 옥상 정원 달빛 아래에서 누군가 무심히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관람료 대신 맥주 한잔을 건내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낯선 음식을 맛보고 또 대접하고,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다음 여행의 루트를 구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게스트하우스 안의 그들은 금새 친구이자 작은 가족이 된다. 이해관계, 간섭, 선입견 없이 주고받는 서로에 대한 진짜 관심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긴 삶에 있어서 24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며칠은 순간의 찰나일지 모르지만, 거기에서 여행의 진짜 즐거움이 있다고 여행객들은 생각하는 듯 했다.